맛과 지혜는 모두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몸으로 느낀 체험에서 우러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마치 한자말 풍미(風味)가 음식의 '고상한 맛'을 뜻하면서,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 됨됨이'를 뜻하듯이. 또 풍미가 정보·지식보다는 잘 익은 지혜에 걸맞은 단어이듯이. 비언어적이지만 깊은 체험에서 우러난 지혜는 언어를 통한 지성보다 사람의 근본에 닿아 있다.
특히 맛의 바탕인 후각은 기억과 연결돼있다. 소설가 프루스트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 향기가 기억의 두루마리를 풀어내는 장면을 섬세하게 그렸다. 문학만 그런 게 아니다. 최근 '후각 뇌피질'에 자극을 주면 기억력이 좋아진다는 연구가 나왔다. 또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보다 후각이 발달했고, 이게 인류가 번성한 이유일 수 있다는 연구도 나왔다.
■후각은 사회적 기능의 진화와 연결
다른 감각들에 반해 후각은 뇌에서 감정, 기억, 공포, 동기, 쾌락, 성적 끌림을 다루는 영역과 직결된다. 그래서 후각은 과거 사건이나 사람들에 대한 감정을 강하게 촉발하며 집단 결속, 사회적 학습과 같은 사회적 기능의 진화와 연결된다는 거다.
세르가 '오감'을 펴낸 1985년 독일에서는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 어느 살인자 이야기'가 나왔다. 18세기를 무대로 하는 이 소설도 후각이 참된 앎의 바탕이란 생각을 담았다. 계몽주의 시대, 즉 합리주의 시대에 주인공이 '궁극의 향기'를 찾는 여정은 차갑고 메마른 사회 속에서 참된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었다.
'오감'과 '향수'의 의도는 명백하다. 합리적 언어를 최고로 여기는 현대 문명, 또 오감 가운데 지성이 믿을 만한 감각으로 시각을 최고로 여기고, 청각을 그 다음으로 여기던 지성의 전통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이처럼 세르는 후각을 비롯한 '감각적 지혜'가 소중하며, 삶에 밀착한 지혜라고 여긴다. 그런데 영화 '체리 향기'를 떠올려 보자. 무슬림 신학도의 정연한 논리에는 꿈쩍도 않던 주인공이 노인의 체험에서 우러난 얘기에는 크게 흔들렸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결국 수면제를 먹었다. 왜 체험의 지혜가 그를 설득하지 못했을까. 주인공이 몸소 겪은, 자신의 '체리나무 향기'가 아니었다는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감각은 직접적이므로 세계의 진실에 가깝지만, 저마다 특별하고 개인적인 상황에 따른다. 더구나 후각은 특정 장소에 결부된 성격이 제일 강하다. 어릴 때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어머니 몸이나 옷장 냄새에 연결돼 있듯이. 후각은 개인적이고 '장소 특정적'이다. 미국 플로리다 병원은 바다 냄새에 코코넛, 바닐라 향을 배합한 향기를 제공하며 장소성을 살리기도 한다.
■감성은 삶의 의미 찾는 출발점
여기서 감성 교육의 방향을 생각해본다. 현재 세계적으로 후각의 중요성을 인지하며 '아로마 테라피'나 '향기산업'이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감성 교육에서 중요한 건 익명의 감각이 아닌 자신만의 감각을 계발하고 찾는 것이다. 자신의 근원에 이르는, 그래서 극한 상황에도 자신을 북돋우고 되찾을 수 있는, 자신만의 체리 향기를 찾게 도와야 하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감성 교육의 장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주위에도 있다. 산, 강, 바다, 나무와 같은 자연은 감성의 터전이며 새소리, 바람소리, 웃음소리, 또 도시의 추억이 담긴 장소들은 감성 계발의 학교이다. 그래서 도시 속의 감성 교육은 도시 속의 걷기를 통해 이뤄질 수도 있다. 비록 현재 전국에서 열리는 '걷기대회'는 스펙터클한 경관의 경험이나 신체 건강에 치우쳐있지만.
자신의 감각을 찾는 건 삶의 의미를 찾는 출발점이다. 또한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건 자신과 공동체의 자기 파괴를 막는 조절 능력, 즉 지성을 얻는다는 뜻이다. 세르는 감성과 지성이 이렇게 엮여 있다고 본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보면,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신체가 건장한 이들이 아닌 음악가나 시인이었다. 극한 상황에도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이들이 살아 남는다는 것. 또 그렇게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은 바로 자신의 감각을 찾은 사람이란 것. 세르는 이렇듯 유동적인 감각을 통해 굳건한 지성이 이뤄진다고 역설하는 것이다.
# 미셀 세르
- 과학과 인문학 연결하는 '경계 가로지르기'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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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셀 세르 |
문·이과 교육을 모두 거친 그는 과학 역사 문학 예술 등의 연구를 통해 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는 독특한 철학을 보여준다. 다양한 영역을 하나의 토대로 '융합'하는 대신, 영역 간 '상호 번역'을 제안한다. 이 '경계 가로지르기'의 상징으로 '헤르메스'와 '천사'를 제시했다.
이 글에서 다룬 저서 '오감'은 헤르메스 연작 5권(1969~1980)을 마친 뒤 '천사' 개념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나왔다. 신체 감각에서 분리된 현대 지식의 황폐함을 돌아보며, '맛'을 비롯한 감각이 과학 언어로 모두 설명되지 않음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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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감의 철학이 '상황'의 철학이라고 했다. '유동적인'(circum-) 감각과 '굳건하게 서있는'(-stance) 지성이 연결될 때, 인간이란 존재의 상황이 성립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