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사회예술 비평](2) 장소의 정치, 공공예술
ㆍ광장에 들어선 ‘문화정치’
예술은 장소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장소는 시간과 공간의 합이다. 예술은 시간과 공간의 축선 위에 존재한다. 동시에 예술은 그 시간과 공간의 축선을 벗어나 시공을 초월한 세계를 추구한다. 장소성은 예술을 구속하는 동시에 구원하는 개념이다. 예술은 장소 속에 뿌리 내리고 있으면서 동시에 장소를 초월하고자 하는 리얼리티이자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공공예술은 필연적으로 세 가지 조건과 만난다. 작품 제작을 지원·주문하는 재원의 특정성과 만나고, 공공적인 의제라는 특정성과 만나고, 장소의 특정성과 만나야 한다. 재원의 공공성이야 전제조건이라 치더라도, 의제와 더불어 장소의 특정성은 공공예술 작품의 성패를 가르는 최대 변수다. 전시장에서의 작품 설치는 작품을 둘러싼 주변 공간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선택폭이 넓다. 하지만 공공장소에서는 예술작품을 위해 주변 공간을 최적화하는 일은 거의 없다. 작품이 장소성에 맞춰 자신의 모양과 크기, 빛깔 등을 결정해야 한다. 이처럼 낮은 처신으로 장소와 만나는 태도를 공공예술의 ‘장소 특정성(site specific)’이라 한다.
■ ‘세종로 이순신’은 군사정권의 문화정치
세종로에는 기념비적이고 상징적인 조형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다. 이 작품은 군인 출신의 정치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문화정치 결과다. 작품 자체로만 보면 탄탄한 조형성, 상징성을 지닌 좋은 인체 조각이다. 그러나 장소성의 맥락에서 보면 세종로라는 장소성과 이순신이라는 전쟁 영웅의 동상이 공존하는 상황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공공예술이 장소의 정치로 작동한다는 것을 잘 드러내는 것이다.
1968년,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는 15인의 위인 조상을 서울 주요 지점에 설치했다. 대통령이 헌납한 이순신 장군상은 광화문 네거리에, 김종필 당시 공화당 의장이 헌납한 ‘세종대왕상’은 덕수궁에 세워졌다. 이후 남대문 앞의 유관순상, 시청 앞의 김유신상 등은 지하철 공사로 일찌감치 공원으로 이전됐다. 덕수궁의 세종대왕상도 2012년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겨 제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유일하게 이순신 장군상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종은 덕수궁에 모시고, 세종이 집무를 본 경복궁 앞 세종로에는 이순신을 모신 그 뜻은 무엇일까. 각별한 애정을 보이며 작가 김세중의 작업을 독려했던 박 전 대통령은 군인 이순신을 통해 쿠데타로 등극한 군사정권의 정통성 빈곤을 보충하고자 했다. 공공예술이 장소의 정치로 직결된다는 점을 헤아려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세종로의 이순신 장군’은 23전 23승 불패신화의 명장임에도 불구, 두고두고 철거와 이전 논란에 휩싸였다.
■ 명품주의 예술행정의 비극 ‘청계천 조개’
공공성의 견지에서 예술가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장소성의 문제가 무심결에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청계천 소라탑’으로 잘 알려진 클레스 올덴버그의 ‘스프링’이다. 청계천 시발점에 세워진 작품은 장소 특정성을 철저하게 배반했다. 생태하천을 표방한 도심 속 하천 공원의 시점부에 세워지는 것이기에 많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현장에 와 보지도 않은 세계적 대가는 공허한 말잔치 속에 빈 소라껍데기를 세워놓고 말았다. 작가는 처음에 인도양 조개라고 했다가 ‘한강 지류에 웬 인도양 조개’냐고 하니 ‘그게 아니고 다슬기 형상’이라고 말을 바꾸고, 더 나아가 한복의 색동과 옷고름까지 끌어들여 말의 성찬을 베풀었다.
하지만 공공예술의 기본인 장소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주의 오류를 덮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36억원의 공공재원이 들어간 이 프로젝트는 장소 특정성과 무관하게 ‘해외 유명 작가 명품주의’로 흘러버린 까닭에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호언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말은 공허만 메아리로 청계광장을 떠돌고 있다.
특정 장소와 예술 작품은 서로를 배반하지 않아야 한다. 장소성과 예술성이 동행이라는 아름다운 걸음걸이에 의해 상호보완적인 개념으로 작동할 때 진정한 공공예술 작품이 탄생할 수 있다.
■ ‘세종로 세종대왕’은 수직의 권위 답습
세종로에는 2009년 설치된 김영원 작가작품 ‘세종대왕상’이 있다. 설치 당시 세종대왕 탄신 600주년을 기념해 1998년 여의도공원에 세운 ‘세종대왕상’(옥봉환 작)을 세종로로 옮기자는 논의도 있었지만,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신작을 선택했다. 김 작가의 ‘세종대왕상’은 높이 6.2m 좌상을 4.2m받침대 위에 올렸다. 최고의 조소 솜씨로 빚은 이 조상은 세종대왕의 어질고 단정한 성품을 잘 담았다. 그러나 흙을 빚어 형상을 만드는 솜씨만으로 공공예술의 맥락이 성립하는 건 아니다.
이 작품은 동시대 감성으로, 장소 특정성을 헤아리는 공공예술의 어법을 녹여내는 데는 실패했다. 수직상승하는 영웅의 형상이 공간의 중심부에 우뚝 솟아 광장을 지배하고 호령하는 모뉴먼트의 전형성을 21세기 서울 한복판에서 재연했기 때문이다. 좌대 위에 조상을 올려 높이 우러러보게 하는 것은 상투적이다. 수직적 위계에서 수평적 소통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있는 동시대 공공예술의 관점에서 이 작품은 구체제의 유산을 답습했다.
시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성군의 친근함을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은 작가의 안목 탓만이 아니다. 5개월 만에 뚝딱 거대한 기념조상을 만들어야만 한 예술가에겐 장소 특정성을 고려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좋은 공공예술 작품은 작가의 예술적 창의력과 행정의 합리성, 무엇보다 시민 사회의 수준을 필요로 한다. 우리 모두 함께 새겼으면 하는 사회예술의 덕목이다.
■ 예술은 장소와 관계 맺는 리얼리티
근대예술은 특정 공간으로부터의 해방에서 출발했다. 특정 장소에 묶인 전근대 시기의 예술작품은 그 처소가 어디인가에 따라 재질과 규모, 양식 등을 달리했다. 대부분의 역사적 명작들은 작품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 것 같아 보이지만, 처음에는 특정 장소에 맞는 나름의 쓰임새를 염두에 두고 만든 ‘쓸모 있는 물건들’이었다.
장소로부터의 해방은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이념 아래에서 매우 창의적이고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오늘날 우리가 장소 개념과 상관없이 미술작품을 향유하면서 시공을 초월한 미적 가치 운운하는 것도 이러한 특정 공간, 즉 장소로부터의 해방 덕분이다. 하지만 자율성을 이야기하며 20세기 예술가들이 누렸던 지위는 역사상 가장 특별했던 ‘모더니즘의 짧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모더니스트들이 얘기했던 자율성 이념은 이미 자본 권력에 의해 잠식당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모더니즘에 대한 전면적 반성을 전제로 예술의 공공성을 모색하는 시대이니만큼 장소성으로부터 이탈한 예술의 자율성이란 꿈 같은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예술의 일방주의와 행정의 독주는 사회적 시공간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 예술가의 자율성이나 행정의 권위주의는 시민사회의 공공성과 대결 국면을 맞으면 후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 속의 진리다. 예술과 행정, 그리고 시민 사이에 의견이 엇갈릴 때, 어느 것이 공공의 이해에 부합하느냐를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공공예술의 참된 윤리다.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