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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의 사회예술 비평](1) 프롤로그 - 사회와 예술의 지형도 그리기 김준기 | 미술평론가

오 창작소 2015. 4. 16. 21:49
[김준기의 사회예술 비평](1) 프롤로그 - 사회와 예술의 지형도 그리기
김준기 | 미술평론가
ㆍ예술비평, 예술을 넘어 ‘사회의 장’으로 확장

멀게만 느껴지던 예술이 어느덧 우리 삶 속에 친근하게 다가서고 있다. 예술은 미술관이나 공연장에서 만날 수 있다는 통념은 옛이야기다. 건축물 안팎은 물론 광장과 거리에서 만나는 예술, 액자 속 그림이나 좌대 위의 조각뿐 아니라 영상과 디지털이미지로 만나는 공공예술 작품도 많다. 심지어는 공동체의 일원이나 행동가처럼 일상 속으로 바투 다가서는 예술가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예술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필자는 인간 내면의 심리적 소통을 넘어서 공공의 장소에서 사회적 의제를 다루는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회예술’이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오늘날의 예술 흐름을 들여다보려 한다.


■ 사회예술은 사회자본 논의와 깊은 연관

사회예술(Social Art)은 사회적 가치와 관계 맺는 예술이다. 그것은 ‘사회적 자본’ ‘사회적 경제’ 등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사회적 관계를 강조하는 예술이다. 사회적 의제보다는 예술적 의제에 천착한 본격근대예술(High modernism) 시기를 정점으로, 예술은 점차 사회와 접점을 형성하는 쪽으로 변화해왔다. 사회예술은 예술이 사회와 구체적으로 관계 맺기를 시작한 이후의 동시대 예술흐름을 진단하는 비평적 용어다. 그것은 민중미술, 사회비판예술, 공동체예술, 정치미술, 행동주의예술, 공공미술 등으로 불리고 있는 것들을 사회적 관점에서 갈무리한 것이다.

사회예술은 사회자본(Social Capital) 논의와 연관이 깊다. 사회는 공동생활을 하는 집단, 즉 개인이 아닌 2인 이상의 구성원 사이에서 나오는 관계망이며, ‘자본’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재화와 용역의 총화이다. ‘사회자본’은 신뢰, 배려, 나눔, 참여, 소통, 존중, 포용, 협력, 상호부조, 공존, 동행, 공공 등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 사이의 좋은 관계망을 말한다. 따라서 사회자본은 금융자본이나 사회간접자본 등과 달리 눈으로 볼 수 없는 무형의 것이지만 우리가 이미 정서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공공적 가치를 뜻한다. 자본주의 변화에 따라 물신화한 가치 전도의 동시대 사회 구조와 현상에 비춰 사회공동체의 상호신뢰와 평화공존의 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사회적 자본 담론은 마을과 도시, 국가, 전 지구의 구성원들이 공유할 만한 시대정신이다.

사회적 소외와 갈등을 치유하고 공동체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사회적 관계망으로써의 ‘사회자본’ 논의는 예술의 사회적 존재가치를 해명하는 데 유력한 근거를 제공한다. 

사회와 예술은 전근대와 근대, 탈근대 시기를 거치면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만났다. 전근대 사회가 예술에 주문자로 작용했다면, 근대사회에서 예술은 자족적 영역으로 발전해나갔다. 탈근대사회는 예술의 장과 사회의 장을 상호 유기적인 관계에서 사유하고 실천하는 통합의 관점을 제공한다. 탈근대시대의 예술은 사회적 실천과 예술적 실천을 창조적으로 결합하는 ‘사회예술’이다.

사회예술의 시대에 접어들어 사회와 예술은 접점을 형성하며, 상호간의 중첩을 만드는 교집합 관계를 만든다. 나아가 사회와 예술의 합집합을 지향하는 온전한 예술사회의 장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근대적 개념의 예술은 예술가 주체의 자율성을 전제로 하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가치경쟁의 장이다. 따라서 그것은 사회 속에 존재하는 제도이자 관행이며 문화인 동시에 생활세계와는 별개의 독자적이고 자족적인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탈근대시대의 예술은 사회와의 접점을 형성하는 비판적 성찰의 예술을 낳았으며, 행동주의 예술이나 공동체 예술과 같이 사회와 교집합을 이루는 예술로 진일보했고, 나아가 사회적 주문을 창조적으로 수행하는 새로운 유형의 공공예술로 진화하고 있다.


■ 탈근대 예술, 새로운 공공예술로 진화

비판과 행동, 공동체, 공공 등은 사회와 예술의 탈근대성을 실현하는 동시대 예술의 핵심 개념이다. 

사회적 예술은 사회의 구조와 현상을 의제화하는 예술이자, 사회적 통념을 넘어서는 전유와 전복의 예술이며, 공동체적 가치를 지향하고 예술적 소통을 추구하는 실천적 예술이다. 그것은 비판적 리얼리즘이나 커뮤니티아트, 액티비스트아트, 퍼블릭아트 등과 같이 이미 익숙하게 현대미술을 분류하는 미술 종류의 이름으로 존재하는 예술이다. 사회예술을 조망하기 위해 위와 같은 예술 종류의 이름을 비판예술, 행동예술, 공동체예술, 공공예술 등 4가지 예술로 나눠 보면 각각의 태도와 어법이 분명하게 보인다. 그것은 예술적 실천과 사회적 실천, 장소와 의제 사이에 걸쳐 있다.

비판예술과 공공예술은 각각 예술적 실천과 사회적 실천에 무게를 둔다. 비판예술은 예술가의 자율성에 입각하여 사회와 비판적 거리두기를 시도함으로써 사회자본에서 말하는 신뢰와 공존, 조화 등을 주선하기보다는 고정된 가치에 대한 불신과 대립, 갈등 등의 요소를 강조한다. 

반면에 공공예술은 사회적 가치를 옹호하고 생성하기 위한 일련의 사회적 실천에 부합하는 예술적 실천을 위하여 새로운 의미의 주문생산을 적극적으로 표방한다. 전자가 예술과 사회의 접점을 형성하는 수준이라면, 후자는 사회와 예술의 합집합을 지향한다. 비판예술과 공공예술이 대립쌍을 이루고 있다면, 행동예술과 공동체예술은 그 가운데 지점에서 양자의 특성을 대리하고 보충한다. 

■ 사회예술의 프레임 속 예술의 흐름 짚기 

비판예술이 사회와의 거리두기를 통하여 비판적 메시지를 날리는 것과는 달리, 행동예술은 직접 사회의 장에 뛰어드는 참여와 개입의 예술이다. 그것은 특정한 의제를 중심으로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는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예술이다. 공동체예술은 상호부조와 협동의 정신으로 공동체의 가치를 옹호하는 예술실천이다. 그것은 특정한 장소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의제 중심의 행동예술과 대립쌍을 이룬다. 의제와 장소를 중심으로 하는 이 두 가지 예술 종류는 다른 한편으로는 비판예술-행동예술, 공동체예술-공공예술의 쌍으로 친연성을 가지기도 한다. 

요컨대 민중예술 이후 포스트민중예술과 정치예술, 탈근대예술 등 다양한 이름으로 진화하고 있는 한국의 동시대 예술들은 사회와 예술의 거리를 줄이고 합치는 과정에서 사회예술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앞으로 ‘김준기의 사회예술비평’은 예술계의 좁은 장을 넘어 사회의 장으로 비평의 시각과 관점을 확장한다. 사회예술은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는 예술로 비판예술, 공동체예술, 행동예술, 공공예술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연재는 장소와 방법, 의제 등의 관점에서 공공미술을 비롯해 비평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회예술을 다룬다. 마당, 길, 집, 마을, 쉼터, 무덤, 벽 등의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예술프로젝트들을 비롯해 점·선·면, 뉴미디어, 비물질, 몸, 자연, 영성, 일, 공동체, 과학, 분단, 애도와 치유, 참여와 행동의 방법과 의제를 중심으로 사회예술비평을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