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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時/여진

오 창작소 2014. 3. 3. 16:33

▲ 여진

수백 개의 뼈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로부터 가장 멀리까지 흘러갔던 바퀴가
다시 나를 향해 달려오나
끊어진 철로처럼 누워
불안한 진동을 감지하는 바닥인가
이 순간 나는 유신론자 아니 유물론자 아니 아무 것도 아니
다만 닥닥 부딪치는 이빨을 소유한 자
그러나 나의 떨림에도 근원은 있다
차가운 내 살 속에도 자갈과 모래처럼, 또 나뭇잎처럼 켜켜이 쌓인 사람들이 있다
지붕 없이 이빨도 없이 새들은 벌써 이곳을 떠나고
뒤틀려 열리지 않는 문짝 속에서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하고 나는 휘어져 버린 시간
당신의 밤은 무사한가
오늘은 기차처럼 몸을 떨고
목소리는 나의 것이 아니고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모든 사물이 제자리로 가기 위해 흔들린다, 는 생각
숨 쉴 때마다 더 낮은 곳으로 가라앉는 바닥
나무뿌리 같은 혈관들이 살갗으로 불거져 나온다
나를 떠난 것과 나에게 떠밀려 온 것
사이에서, 나는 뜨거워진다
온몸에서 문이 열리고 있다

- 김지녀 (1978~ )

△ 여진은 본진이 발생하는 진원지와는 늘 다른 곳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그러니 여진이 다가오는 속도나 강도, 그 횟수도 예측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금 이곳에 떨림이 있는데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혹은 내가 떨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끔찍함에 사로잡혀서, 우리는 우리의 삶의 알리바이를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령 나는 누구인가, 왜 당신을 사랑하는가, 왜 우리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가와 같은 질문들이 그렇다. 이런 질문의 경우, 명확한 답이 소명될 때 까닭이 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의 문을 걸어 잠근다.

늘 우리를 흔들어 놓는 질문이되 해법이 마련될 수 없는 허무들이다. 그러니 심하게 흔들리고 나서야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는 여진의 통증처럼, 예측할 수 없는 찰나와 수없이 이별하며 우리는 마냥 살아가는 것이다.

나의 지진계는 어디쯤에서 곡선을 그리고 있을까. “온몸에서 문이 열리고” 또 누군가 다시 나를 향해 달려온다. 오늘, 당신의 밤은 무사한가.

출처 / 경향신문, 경향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