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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문장을 읽으시오>

오 창작소 2014. 8. 7. 16:51


1.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 전은 인문학박물관의 소장품들을 재구성한 아카이브 전시이다.

2008년 중앙고등학교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개관한 인문학박물관은 방대한 양의 책과 문서자료를 바탕으로 20세기 한국 사회의 근대화 과정을 추적하면서 정치, 사상, 문화의 주요한 정신사적 흐름을 조망하기 위해 세워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2013년 고려대학교박물관으로 이관이 결정되었다. 본 전시는 이렇게 이동 과정에 놓인 소장품들의 중간 기착지로 기획되었다. 일민미술관을 무대로 삼아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들과 재회하기 위한 것이었다.


2. 박물관에서 미술관으로의 장소의 변화는 소장품들을 둘러싼 맥락의 변화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소장품이라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가정된 시선의 보호를 받으며 일사불란하게 오와 열을 맞춰 부동자세를 취하는 데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미술관은 그런 전시의 습속과는 거리가 멀다. 현대적 시각성의 천변만화와 호흡을 함께하는 변덕스러운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곳에서 박물관의 자료 분류 체계는 작동 불능 상태에 빠지고, 역사적 의미의 구성 원리는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소장품들은 무방비 상태로 관객의 시선 앞에 노출된다.


3. 본 전시는 '소장품의 이동'과 '장소성의 변화' 라는 조건을 적극 활용하고자 했다. 이 두 가지 조건은 전시의 재구성을 위해 다소간의 실험적 접근을 시도해볼 수 있는 여백의 공간을 제공해주었다. 먼저 그 접근의 첫 번째 단계는 기획자들 각자 자신이 서 있는 시각문화 연구자와 큐레이터의 자리에서 박물관의 전시장을 응시하며 미술관에 놓일 500여점의 소장품들을 선별해내는 것이었다. 7개월여의 리서치 기간 동안 높은 곳으로 올라가 소장품을 굽어보고 싶은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대한 억제하려고 노력했다.


4. 두 번째 단계전시의 주제를 결정하기 위해 소장품들과의 시간적 거리를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었다. 관객의 기억력에 호소하는 주제들은 피하고자 했다. 단순히 노스탤지어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소장품이 온몸에 새기고 있는 현대사의 질곡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것들은 현재의 감각으로는 감지하기 어렵지만, '2014년, 바로 지금 여기'의 현실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그 무언가로 재맥랙화될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서는 기획자들이 20세기 후반의 출생자로 소장품들을 낯설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히려 이점으로 작용했다.


5. 세번째 단계소장품의 주종을 이루는 인쇄물의 매체 특성에 주목하고 그에 걸맞은 전시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주지하다시피 미술관은 도서관이 아니다. 미술관은 '관객'이라는 주어와 '보다'라는 술어가 어울리는 반면, 도서관은 '독자'라는 주어와 '읽다'라는 술어와 짝을 이룬다. 기획자들은 미술관에 전시될 인쇄물들이 물성을 갖춘 사물로 보여지는 데 그치지 않고 텍스트와 이미지의 매체로 읽혀지기를 원했다.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관객'과 '독자'라는 역할, '보기'와 '읽기'라는 행위가 서로 겹쳐지는 점이지대로 전시 공간을 재편하고자 했다.


6.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 전은 바로 이런 기획 과정을 거쳐 인문학박물관 소장품들의 중간 기착지로 설계되었다. 전시 공간은 세 개의 섹션 <모더니티의 평행우주>, <인간의 생산>, <이상한 거울들>로 구성되었다. 이 세 섹션은 단일한 전체를 이루기보다는 각각의 질서를 유지하며 서로 느슨한 연대를 맺고 있다. 이런 관계를 좀 더 촘촘하게 만드는 역할은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휴먼 스케일'에게 맡겨졌다...   




근대화의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여러 형태의 기록물들을 재구성한 아카이브 전시 형태가 궁금했다. 읽기를 위한 텍스트가 촘촘한 인쇄물을 보이기 위한 시각 이미지로 따로 또 같이 재구성하기 위해서 전시기획이 어찌되었을까하는 물음도 컸고 어느 지점에서 근대화를 풀어가는지도 궁금했고 말이다. 세 개의 주제로 전시 공간이 재구성되었는데, 1층의 전시장은 해방 전후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의 시차와 거리에서 근대화가 개인과 그 집단의 정체성에 어떠한 흔적을 남겼는지 가상의 2인을 내세워 그들이 보았을 법한 이미지와 텍스트들을 전시했고, 2층은 인간의 미래를 기획하는 행위로서 책이 교육의 매개체 역할을 하던 1980년 이전에 초점을 두어 당대에 보급된 '인간'의 청사진과 전제된 사회의 구상들을 일민주의 다이어그램, 교육전시회 화보, 서울중고등통신학교 입학안내서 등을 통해서 되살려냈다. 또한 시대상을 수렴하거나 발산하는 거울로서  다양한 형태의 사운드와 영상, 이미지들이 전시되었다. 내가 본 전시의 흐름은 이랬다. 1층의 첫 섹션으로 전시를 개괄하고 2층 초입의 두번째 섹션으론 주제가 심도있게 나아가면서 세번째 섹션으로 다양한 형태의 이미지들로 열린 해석이 가능하도록 마무리 되었다. 

박물관의 소장품 태반이 활자로 된 인쇄물이라는 것은 이미 근대의 주요 매체 특성을 대변하는 것이라 본다. 그런점에서 모더니티를 해석하는데 텍스트가 전시 주요 소재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영상 이미지가 주요 소통체계가 된 지금에서도 문자에 주목하는 이유는 혹시나 모르게 현재가 된 당대의 미래가 있지는 않을까 싶은거다. 

      

동네 곳곳 활자들에서 알게 모르게 숨은 모더니티의 잔재를 찾을 수 있지않을까? 그 시대를 살지 않은 나에게서 숨은 모더니티가 있지는 않을까? 그렇지 않을까? 난 현재를 살고있나? 난 어디를 살고있을까? 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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