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말하고싶은대로

2012년 2월 16일 오후 02:17

오 창작소 2012. 2. 16. 14:17

 

Written by miran (miran@artnstudy.com)

 

 

 

신사임당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성은 신이요 이름은 사임당이라고 대답하는 사람,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임당'은 그녀가 머물렀던 집의 이름을 딴 호(號)지, 진짜 이름이 아니다. 살펴보면 그 옛날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왕비를 중전마마, 세자를 동궁마마라고 불렀던 것은 감히 왕족의 이름을 부를 수 없기도 했거니와 그들이 머물렀던 거처가 각각 중궁전, 동궁이라 이름 붙여졌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혜경궁 홍씨처럼 중전이지만 중전마마라 부를 수 없는 애매한 상황에서도 당호를 대신 불렀다. 전통사회에서 집은 곧 그 사람의 이름에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현대 주거환경을 대표하는 아파트는 우리에게 어떤 이름을 붙여주었나?

노동자 그리고 아파트의 탄생

19세기 유럽에서 두 가지 혁명이 있었다. 영국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이 그것인데, 둘 다 아파트라는 전에 없던 공동주택을 탄생시키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리버풀, 버밍엄, 맨체스터 같은 신흥공업도시에 일자리가 넘쳐나고 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이때 일거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온 가난한 농부들이 머물 수 있는 집은 턱없이 부족했다. 좁은 방에 여럿이 기거해야 했고 수도시설과 화장실 또한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콜레라와 페스트가 창궐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동주택을 짓는 것이었다. 한정된 땅 위에 층을 쌓아 올리고 한 채에 여러 가구가 살도록 설계되었다. 아파트의 탄생이다.

프랑스에서도 가난하고 배고픈 노동자들은 사회의 잠재적 위험요소로 작용했다. 그래서 이들에게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제공하는 일이 우선시 되었고 여기서 두 가지 주장이 갈라져 나왔다.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들에게 무상으로 완벽한 집단주거를 제공하자 말했다. 대표적인 예로 '팔랑스테르'가 있다. 아파트 내부에 집회장소로 사용할 수 있는 공동 공간이 있고 여성이 가사와 육아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도록 공동주방과 세탁실, 공동 탁아실을 두는 형태를 갖추자는 것이다. 이에 반해 프랑스 박애주의자들은 아파트의 공용공간을 최소화하고 각 가정이 최대한 안락함을 누릴 수 있도록 개별화할 것을 주장했다. 지배층의 입장에서는 전자와 같은 환경에서 노동자들이 단결하는 것보다는 개별 가정의 안락함으로 흩어지는 편이 유리했기에 후자의 집단주거 방식이 범용 되었다.

이러한 탄생비화(?)로 인해 유럽에서는 아파트가 빈민주거, 저질 주거의 이미지를 떨치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평범한 노동자가 서울에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숨만 쉬고 연봉을 모아도 최소 수십 년 이상 걸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중산층과 하우스푸어

과거 유럽의 지배층들은 노동자들이 아파트를 구매하도록 유도했다. 은행에 저축하며 돈을 모으고 또 필요한 자금을 대출받아 매달 월급으로 갚아 나가도록 하는 방식은 수익성뿐 아니라 부가적 효과도 따랐다. 노동자들이 더는 파업이나 폭동 같은 행동에 쉽게 나설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일들로 혹여 해고되면 당장 돌아오는 주택 융자금을 갚을 수 없어 보금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생겼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였다. 독재자 시절에 수많은 아파트 단지들이 계획적으로 건설 되었고 도시로 유입된 노동자들이 살 곳이 되었다. 주택담보대출이 그들을 온순하게 만들었고 사회를 안정시키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동시에 아파트를 소유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대도시 중산층 계급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여기에 경제 발전이 거듭되면서 투자와 투기가 덧씌워졌다. 집의 가치를 돈의 가치로 환산하는 시대를 살게 된 것이다. 아파트를 사면 값이 저절로 껑충 뛰었고 이 훌륭한 투자처에 많은 사람이 유혹 되었다. 그러나 저금리를 바탕으로 과도한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한 사람들이 아파트가격 하락과 금리 인상으로 위기에 몰리는 요즘이다. 하우스 푸어 - 집을 소유해서 빈곤한 사람, 우리들에게 모순적인 이름이 하나 더 생겼다.

 

출처-아트앤스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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