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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가장 혁명적인 논문
시적 언어의 물길을 거슬러 오른 끝에 그 뿌리를 찾고 그 뿌리에서 언어에 이르는 과정을 이론적으로 정리한 작업이 크리스테바(1941~ )의 '시적 언어의 혁명'(1974)이라 요약할 수 있다. 세계의 기호론자, 언어학자, 시 이론가들, 정신분석 학자들의 눈을 번쩍 뜨게 했던 이 저서는 사실 크리스테바의 국가 박사학위 논문(지도교수 롤랑 바르트)이다. 우리나라를 위시한 미국 일본에서 같은 제목으로 번역출판 되어 있는 책은 사실은 이 논문의 첫 부분이다. 1965년 크리스마스 무렵 유학생으로 트렁크 하나를 들고 모국 불가리아에서 파리에 모습을 드러낸 크리스테바는 텍스트 이론에 새로운 차원을 개척한 20세기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혁명적인 사상의 하나를 제시하기에 이른 것이다.
프로이트가 의식의 표층 밑에 광대한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했듯이 크리스테바는 '페노-텍스트' 밑에 그것을 떠받치는 마그마상 운동체인 '제노-텍스트'를 상정했다. '제노-텍스트'는 텍스트를 낳는 생산활동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미는 있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곳에서는 통상의 언어 교통과는 다른 논리가 지배한다. 크리스테바의 이론에 드리워진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그늘은 그녀의 이론을 명석하게 하기도 하지만 더 난삽하게 하기도 한다. '시적 언어의 혁명'을 읽는 일은 넓은 학문적 저변을 필요로 하는 고밀도의 노동이다.
내가 그의 이론에 호감을 가졌던 것은 발생학적 방법으로 시적 언어를 해명하는 그 수순 때문이었다. 그가 창출한 여러 개념 가운데서 익혀야할 필수적 개념에 '세미오틱(原記號作用'과 '상볼릭(記號象徵態)'이 있다. 이에 앞서 우선 언어의 기원에 관계되는 대목을 그가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가를 살펴본다. 이 요긴한 부분에서 그녀는 플라톤의 '코라' 개념을 어색함 없이 차용하고 있다. 코라는 원래 어머니처럼 둘레를 젖먹이고 기르는 매트릭스형 공간이다.
이 코라가 세미오틱(질서화된 언어 이전의 욕동의 상태)에 이어지고, 다음에 상볼릭(언어적으로 구조화 된 상태)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크리스테바 이론의 요지다. 신체의 리듬(심장박동 소화기의 운동)에 발판을 두고 있는 가락이나 반-문법적인 데포르메는 세미오틱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질서 지어진 규칙체계에 발판을 두고 있는 안정된 기호 세계는 상볼릭인 것이다.
크리스테바는 시적 언어가 상볼릭에 진입하기 이전의 언어상태라고 각별히 강조하고 있다. 세미오틱은 때로 상볼릭에 침입하여 그 규칙(문법)을 뒤엎거나, 단어를 변조하기도 하고 레토릭을 구사하는 횡포를 부린다. 이 '파괴적인 숨결'에서 작품을 생산해낸 작가 시인들 (조이스, 바타이유, 세린, 말라르메, 로트레아몽)에 크리스테바는 각별한 애정을 보이고 있다. 국역 출판이 기다려지는 '시적 언어의 혁명' 제2부는 말라르메와 로트레아몽의 작품분석을 통하여 상볼릭 안에 세미오틱이 분출하는 4가지 모습을 다루고 있다. '시적 언어의 혁명'은 난해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그러나 이 관문을 통과하는 절차는 시의 이론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에게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이 여성학자가 이룩한 의미 생성 분석 이론은 문학연구를 점잖은 교양주의에 모시려는 아나크로니즘에 대항하여 시가 안고 있는 미지의 운동에 눈길을 돌리도록 권유하는 끊임없는 유혹이다.
- 지역의 빛으로 독자의 희망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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