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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발터 벤야민의 `과거의 그림`

오 창작소 2013. 11. 20. 20:22

 

발터 벤야민은 '과거'를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꿈'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 꿈이 어떤 의미를 갖고있을까를 생각하는 사람은 곧 그 꿈 (과거)가 자신의 현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를 곧 그 꿈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를 묻고있는 사람이다.


과거의 그림은 이처럼 그 속에 현재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꾸는 꿈의 내용이 우리 자신의 현재적 삶, 그 속에서 일어난 사건, 우리의 감정과 생각들에 의해 구성되고 규정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꿈 처럼,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한 순간, 섬광처럼 번쩍 우리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곤 곧 사라지고 마는 과거의 그림은 우리의 현재, 우리의 지금 순간의 삶에 의해 불러내어지고 떠올려진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를 입에 무는 순간 불현듯 과거의 어느 한 순간의 그림이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것을 경험하듯, 과거는 이처럼 우리의 현재가, 우리도 알지못할 어떤 조건을 만들어 주는 순간, 순간적으로,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섬광처럼 우리 머리 속을 스쳐지나간다.


그러나, 그 과거의 그림이 도대체 왜,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머리 속에 떠올랐는지, 곧 그 과거의 그림이 어떻게 우리의 현재와 관계하는지는 쉽게 밝혀지지 않는다. 우린 우리가 꾼 꿈의 의미를 '해석'하듯 그를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 그 과거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에게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던, 우리의 의식 속에 떠오르지 않았던 저 과거의 그림이 이처럼 불현듯 우리에게 떠올려 진다는 것은, 우리의 과거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소멸되거나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 속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린 그것을 의식적으로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과거에 대한 기억은 우리 속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다.


그렇게 인식되지 못한 채 쌓여있던 과거의 그림들이 어느 순간 섬광처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그것이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나의 현재와 어떤 결절점을, 어떤 접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 과거의 그림은 나의 현재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도대체 내 현재의 무엇이 잊혀져 묵혀있던 과거의 그림을 불러내었는지 우린 알 수 없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믿음 속에 등장하는 '천상의 책'엔 인간의 모든 행동과 사건, 우리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 나아가 앞으로 우리에게 일어날 모든 사건들이 다 기록되어 있다. 그 책은 저 심판의 날 심판관 앞에 선 우리에게 낭독되어, 우리에게 우리가 저질렀던 우리에게 일어났었던 모든 일들을 상기시켜 주고 그에 따른 심판을 받을 수 있게 해 준다.

 

그 책엔 우리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 크거나 작은 모든 사건들, 우린 이미 잊어버리고 망각해 버렸던 사소한 모든 우리의 행동과 말,말하자면 우리 과거의 모든 순간 순간들이 다 기록되고 인용되어 있다. 우린 우리가 잊고 있었던 우리 자신의 완전한 과거를 이 심판의 날 다시 상기받게 되고, 그를통해 우리에겐 비로소 우리의 과거가 '완전하게 주어지게' 된다. 


 

우리 자신의 모든, 전 과거의 순간 순간이 기억되게 되는 그 심판의 날은 그리하여 또한 비로소 우리에게 우리의 과거 한순간 한순간이, 그 과거의 특정한 사건과 행위, 말 들이 우리에게, 우리의 현재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가가 분명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를통해 우리 과거의 모든 순간들은 그때 그때마다의 현재와 관계를 맺게되고, 우리 과거 삶의 모든 순간들은 그로써 그 어느 하나도 무의미한 것이 아니게 된다. 우리의 모든 과거의 순간들이 그것의 '의미'를 되찾게 되는 이 심판의 날이 또한 우리의 모든 과거가 '구원'되는 순간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출처 : 발터 벤야민과 현대
글쓴이 : 김남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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