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말하고싶은대로

2014년 2월 8일 오후 02:24

오 창작소 2014. 2. 8. 14:35

아름다움은 판단되는 것인가? 아니면 느끼는 것인가?

 

'아름다움'을 개인적으로 '나다움' 더 나아가 '자유로움'으로 해석한다. '我름다움' 으로 대체해 본 것이다. 이것은 욕망이 자유롭게 표현되는 나다움이다. 근대에 칸트는 미의 기준을 4가지로 분류하여 생각했다고 하는데, 나의 관점에서 아름다움이란 세계 전체의 질서를 통합한 원리로서 분화된 미의 기준을 다시 총체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렇담, 분화된 미의 기준이 텍스트라면 미적 판단은 컨텍스트이며 모두를 총체적(직관적)으로 느끼는 것을 메타-콘텍스트라 불러야 하는가? 이런 의미에서 메타-컨텍스로서의 미가 보편적 의미에서 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창작자라면 나름 창작하는 미적 기준이 있을 법한데, 이걸 다르게 말하면 스타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스타일은 일반인으로선 잘게 분화되어 알 수 없는 노릇이고 단지 직관적으로 '보기 좋음'을 느끼고 좋아할 뿐이다. 예를 들어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위해서 잘게 분화된 원리가 있다. 그것은 비례,구성,구도,빛, 색,배치,배열,등이다. 이러한 기준들이 합목적적으로 어우러지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문제는 분화된 미적 기준을 어울리게 하는 것인데 이건 창작자가 아무리 숙련되어도 좀체 쉽지 않은 일이다. 어찌 되었든 이렇게 만들어진 조형적 원리인 미적 기준에서 아름다움이 진정 아름다움일까? 이것은 근대의 판단으로서 이어진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모더니즘이다. 우리가 작품을 감상하며 느끼는 일차적인 시선은 조형적 원리로서 미적 기준의 아름다움이다. 그리고서 느끼는 아름다움은 내적 자신으로 소급된 느낌을 말한다. 이 느낌엔 과거의 기억일 수도 있을 것이고 많은 이미지가 범벅된 아름다움이다. 흔히 말하는 관객 자신을 반영하는 거울로서 작품을 의미한다. 반영된 거울 속에서 관객은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고 이 상상 속에 거닌다. 이 과정을 '욕망이 자유롭게 표현된 나다움'으로서 아름다움이라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아름다움을 느끼는 과정들이 '아차!' 하며 직관적으로 인식되고 대상과 我의 경계에 선 상태의 느낌이 메타-컨텍스트로서 아름다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름다움의 대상화가 된 사물들에 아무런 의미가 담기지 않은 상태다. 이러한 상태의 아름다움은 판단되기보다 느껴지는 게 옳을 것이다. 판단이 필요한 아름다움은 이러한 느낌을 위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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