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의 생활양식.
개요
사물과 사회관계에 대한 농민의 인식방법과 역사적으로 정형화된 행위양식·가치체계 등을 포함한다.
자연과 농민의 관계
농경문화는 농민들이 농업경영이라는 생산방식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정의이다. 농민들의 장(場)인 농토는 조상 대대로 전해오는 전통과 농민들이 현재 처하고 있는 생활과 삶의 조건을 규정짓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런 조건들은 농민들이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필연적인 요소들을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부의 축적을 만들거나 상징할 수 있는 대상이다. 농민들의 농경방식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 현재의 상업적인 농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집안에서 전수해온 방식에 따라 계속되어왔다. 땅에서 자라는 곡식을 하나의 생물로 간주하여 이 곡식의 성장과정과 함께 생활의 주기가 형성되었다. 이 때문에 자연의 흐름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며 비록 현대의 발달된 농사기술에 의해 일부 보완되기는 했지만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생물성장의 주기와 조건을 거역할 수 없는 현실이 농민들의 가치체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람이란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농민의 철학이 바로 이러한 생산방식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다른 한편, 인간과 토지의 관계는 농민들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불평등관계를 보여준다. 농민들이 소유하거나 경작할 수 있는 토지에 대한 권리는 가구별로 항상 일정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농민사회에서 자주 나타나는 소작과 지주와의 관계는 이러한 불평등관계의 상징이다. 자연 속에서 묵묵히 농사짓는 농민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는 바로 이러한 땅에 대한 권리의 차이를 보여준다. 농민 내부의 계층 분화는 농민들 내의 생산력 차이에도 기인하지만 무엇보다도 외부 집단들과의 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양반지주들의 부(富)의 축적은 신분제적 지배에 기반을 둔 전체 사회의 통치체계와 연관이 있었으며, 근대에는 국가행정기관의 지원에 근접할 수 있는 농민들이 더 유리한 조건에서 토지소유를 확대할 수 있었다. 따라서 농민의 토지소유관계는 농경생산방식 속에서 자연과의 긴밀한 상호관계를 보여주는 친화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농민들 상호간에 존재하고 있는 불평등관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영역이기도 하다. 농민들은 땅을 매개로 형성되는 이러한 사회적 관계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또한 개별 농가가족이 소유 또는 전승하고 있는 땅에 대한 권리는 농민의 가족관계에서 상속제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 농가에서 보이는 가부장적 요소는 바로 자연과 인간을 연결시키는 데 있어서 땅에 대한 기본적인 권리가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전되는 관계부터 출발한다(→ 색인 : 가부장제). 아버지는 땅을 이어받을 아들에게 농삿일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며, 농삿일에서 나온 수확물의 수입은 가족들의 소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구조에서 가족 내의 어른들을 모시고 공경하는 가족윤리가 정착되어왔다. 또한 제사를 통해 조상을 숭배하고 조상의 뜻을 받들어 가계를 이어가는 가족의례는 가부장적 관계를 재확인하여 이러한 구조를 뒷받침하는 이념적 기둥이다.
공동체로서의 농경문화
농경문화는 농업생산이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가족간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 전형적인 사회관계이다. 우리나라 농촌에서 가족을 넘어선 기본 사회단위는 마을이다. 농촌 마을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공동체적 요소가 있다. 전통적으로 마을 농민들을 연결시켜왔던 것으로 두레·품앗이 등의 노동조직이 있었다. 이는 농사 주기에 따라 계절적으로 필요한 노동력의 편차가 심한 벼농사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 조건이 거의 동일한 마을 농민들이 공동으로 물 관리를 해왔던 관행과도 관련이 있다. 공동노동조직은 노동의 강도를 강화시키는 효과와 공동의 오락이나 유흥을 동반하여 마을 농민들간의 유대와 결속력을 재확인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따라서 공동작업을 할 때는 여러 놀이들이 함께 수반되며, 마을마다 풍물이 구비되어 생산과 오락을 함께 하는 농경사회의 전통이 상당 기간 농촌에 남아 있었다. 이러한 공동작업은 농삿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어서 대부분의 전통적 농촌사회에는 마을이라는 지역사회를 공동체조직으로 가능하게 하는 이념적인 장치가 있었는데, 이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부락제이다.
마을의 수호신에 대한 연례제사는 1950년대초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농촌에서 발견되었으나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마을 주민이 1년 동안 아무런 사고 없이 지내고 농사도 풍년이 들도록 마을 뒷산의 당산(堂山)이나 성황당에서 빌던 행사는 점차 사라졌지만, 마을이 운명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는 이념은 여전히 강하다. 이러한 측면은 마을 주민들이 관혼상제에 제한적으로 협력하는 형태로 남아 있다. 특히 상례(喪禮)의 경우는 전 마을 주민이 참여하는 좋은 예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노동조직은 호혜적인 관계에서 성립하기 때문에 교환이라는 묵시적인 합의하에 이루어지며, 알게 모르게 교환된 노동에 대한 계산의 대가는 누구나 똑같다. 마찬가지로 가족의례나 마을 행사에 대한 참여나 협력에도 이러한 계산이 밑에 깔려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서로의 관계에서 균형이 유지된다. 현대의 생산방식에 많은 변화가 이루어져 기계화와 상업화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공동체적 요소는 상당히 약화되고 있다. 그러나 공동체의식은 농민들간에 존재하고 있는 계층의 차이를 완전히 초월할 수는 없다. 이는 마을이나 가족의례에서 각 농민들이 부담해야 할 몫에 대한 묵시적인 요구로 나타난다. 따라서 공동체적 생활양식은 농민들이 필요로 하는 노동력 동원·조화·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관계 등을 제시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농민 내부에 분화된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일종의 보상책을 제공한다.
'::공공미술·벽화:: > 12' 시민주체 프로젝트[이어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scrap」 Home of the Singapore Kindness Movement (0) | 2012.03.11 |
---|---|
공모설명 (0) | 2012.03.08 |
[j Global] 도시·산업제품에 색 입히는 남자 … 색채 지리학 창시자, 장 필립 랑클로 (0) | 2012.03.05 |
현수막의 정체 (동네 재개발을 반대하는 ‘내 재산 지킴이’ - interview) (0) | 2012.02.13 |
내 재산 지킴이 (0) | 2012.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