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적절한 태도가 일관성이 된다면 생활이 참 유연할 텐데 말이지.. 그런데 이 유연성이 글로 읽는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고 나름 그간 경험을 몸으로 부딪치며 알게 되는 것도 있단 말이지. 이것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더란 인생의 가치도 있을법한데, 현실을 깨쳐간다는 건 그 가치가 점점 무뎌지기도 하는 것을 몸으로 알아가는 것이기도 하지. 한편으론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있는 여기에서 이렇게 나는 시간의 결을 켜켜이 타고 생활하는데 결따라 팔랑 귀를 펄럭이지 않을 수 있느냔 생각을 하기도 해. 바야흐로 봄바람이 불구 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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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인은 젊은 시절의 뼈아픈 후회를 시를 써서 얘기했는데 그 '도덕적 경쟁심'이란게 결국 누굴위한 헌신이 아닌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고백했지. 이를 시인은 자신의 폐허라 아프게 노랠 부르더라. 난 내 폐허를 이야기하고 있다. 시인이 말하는 폐허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폐허가 사랑을 고백하게 했잖아. 그래서 어쩜 폐허는 사랑 다름아니겠지. 이처럼 도덕이란 허명을 벗고 그 폐허가 사랑 다름 아니란 게 시인이 진짜 얘기 하는 바가 아닐까. 뼈아픈 후회는 좀 더 일찍 알지 못한 아쉬움이겠고. 난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는 미련함이라 이해하지만, 폐허에 대한 절절함을 시인만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쯤의 미련함이라 보는 거겠지. 누구나 다 같진 않잖아. 그래서 시인이 말하는 후회가 아파 보이는 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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